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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살을 살아도, 보이지 않는다면

요약 · Summary

크립토에서 10년을 보낸 내가, AI와 함께 내 눈을 고치러 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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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작성일: Oct 13, 2026 · @Sungho Kim

크립토에서 10년을 보낸 내가, AI와 함께 내 눈을 고치러 가는 이유

2018년 뉴욕, 어느 콘서트장. 어디선가 날아온 무언가가 내 오른쪽 눈을 쳤다. 그때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몇 년 뒤, 나는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오른쪽 수정체가 하얗게 흐려지면서 사무실 조명조차 눈부셨기 때문이다. 미팅 자리에서도, 저녁 약속에서도 나는 선글라스를 쓰고 앉아 있었다.

엉망진창이었던 눈

나는 원래 눈이 약하게 태어났다. 나와 같은 세대의 많은 친구들처럼 어려서부터 컴퓨터 게임에 빠져 살았고, 눈은 빠르게 근시로 나빠졌다. 눈이 금방 지쳐 책을 오래 읽지 못했다.

그래서 책을 덜 읽어도 되는 수학, 운동, 음악에 몰두했다. 돌아보면 내가 공부하는 방식조차 눈이 정해준 셈이다.

2009년, 눈 안에 렌즈를 넣는 ICL 수술을 받았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술이었고, 수술 직후 세상은 새것처럼 선명했다. 그 선명함은 9년 뒤 뉴욕에서 끝났다.

그 일 이후 오른쪽 눈에 백내장이 시작됐다. 백내장은 몇 년 사이 빠르게 진행됐고, 2023년 결국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전, 왼쪽 눈에 녹내장과 백내장이 함께 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의 눈은 엉망진창이었다.

끝내 바뀌지 않은 것

망가진 건 눈만이 아니었다. 끝없는 출장과 미팅, 저녁 약속 속에서 몸도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2025년 5월,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판단했다. 매일 수영을 시작했고, 달리기와 테니스를 더했다. 근력 운동을 시작했고, 2026년 초부터는 인터벌 트레이닝까지 했다.

몸은 정직하게 반응했다. HYROX를 완주할 만큼 체력이 올라왔고, 체지방률은 10% 정도까지 내려갔다. 처음으로 내 몸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데 하나는 끝내 바뀌지 않았다. 어떤 운동도 눈을 되돌려주지는 않는다.

백내장은 수술로 수정체를 인공 렌즈로 바꾸면 된다. 녹내장은 다르다. 시신경이 조금씩 죽어가는 병이고, 한번 잃은 시신경은 지금의 의학으로 되살릴 수 없다. 할 수 있는 건 안압을 낮춰 진행을 늦추는 것뿐이다.

몸을 잘 관리하면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래 살게 되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계속 볼 수 있을까. 그 질문이 두려웠다.

불가능이 인프라가 되는 걸 본 적이 있다

내 커리어는 3년마다 바뀌었다. 반도체 설계 3년, 창업 3년,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3년. 2016년, 고등학교 선후배로 오래 가깝게 지내던 김서준 대표와 함께 크립토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2018년 3월에는 해시드를 공동창업했다. 크립토에 발을 들인 지 10년이 흘렀다.

그 10년 동안 나는 장난감 취급을 받던 블록체인이 금융 인프라가 되어가는 과정을 맨 앞에서 지켜봤다. 거기서 배운 건, 진짜 인프라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작년부터, 나와 내 주변 모든 사람의 관심이 AI로 쏠렸다. 블록체인이 줬던 충격보다 훨씬 크게, AI는 한 사람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도구였다.

AI는 실패의 비용을 줄여준다. 만들고 도전하는 비용이 이렇게 낮아진 시대에는, 도전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가장 큰 기회비용이다.

다만 생물학은 코드와 다르다. AI는 배우는 비용을 낮췄지만, 검증의 비용까지 낮추지는 못한다. 세포와 사람에게서 확인하는 일은 여전히 느리고 엄격하다.

그래도 변화는 빠르다. 데미스 하사비스는 AlphaFold로 단백질 구조 예측의 판을 바꾼 뒤, Isomorphic Labs를 세워 AI로 신약을 설계하고 있다. Anthropic은 과학자를 위한 Claude Science를 내놓았다. 실험실에 들어가기 전에 컴퓨터 안에서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하는 드라이 랩이 빠르게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바이오나 의학에 아무 배경이 없던 내가 이 문제를 붙잡겠다고 말하는 건 무모했을 것이다. 지금은 적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가 보인다.

눈은 생각보다 멀리 와 있다

공부를 시작하고 가장 놀란 건, 눈이 오히려 첨단 의학의 최전선이라는 사실이었다.

눈은 유전자 치료의 중요한 돌파구가 나온 곳이다. 2017년 FDA가 승인한 유전성 망막 질환 치료제 Luxturna는, 특정 유전자 결함이 원인인 질환에 직접 투여하는 미국 최초의 유전자 치료제였다. 올해 이 치료제를 만든 연구자들이 브레이크스루상을 받았고, 그 연구를 계기로 망막 질환을 겨냥한 유전자 치료 임상은 140건 넘게 이어졌다. (수상 소식)

녹내장 쪽에서는 더 극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 2020년 하버드 의대 연구팀은 쥐의 시신경 세포를 젊은 상태로 되돌려, 녹내장으로 잃은 시력을 회복시켰다. 그리고 올해 6월, Life Biosciences는 같은 원리의 치료 후보물질 ER-100을 첫 환자에게 투여했다고 발표했다. 세포의 노화를 되돌리는 재프로그래밍 기술이 사람 대상 임상에 들어섰고, 녹내장이 그 대상 중 하나다.

10월 초 회사가 공개한 첫 데이터에서는 녹내장 환자 3명을 56일간 관찰한 결과 중대한 이상반응은 보고되지 않았다. 다음 용량 단계로의 진행도 권고받았다. 아직 효과를 말할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노화를 되돌리는 연구와 눈을 고치는 연구가 지금 바로 여기서 만나고 있다. (연구 소개, 임상 결과)

아직 사람의 녹내장을 되돌린 치료는 없다. 하지만 길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길을 직접 걸어가 보려 한다.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요즘 내 주변에 녹내장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근시가 있으면 녹내장 위험이 높아진다. 안경을 쓰고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는 사람이라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더 무서운 건 대부분의 녹내장이 아프지 않다는 점이다. 시야가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좁아지기 때문에, 알아챘을 때는 이미 많이 진행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요즘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한 번쯤 안과에서 안압과 시신경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한다.

앞으로 이곳에서 할 일

이 블로그는 내 눈에서 시작해, 눈 건강 전반과 롱제비티, 바이오로 넓혀가는 여정의 기록이다.

  • 눈 건강에서 롱제비티와 바이오까지, 그 최전선에 있는 연구자와 의사, 창업자를 만나고 그 대화를 남긴다.
  • 가장 최근의 논문을 AI와 함께 읽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옮긴다.
  • 이 분야에서 직접 사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한다.

나는 의사도 과학자도 아니다. 틀린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지적해주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건 내 눈을 고치기 위한 여정이다. 하지만 이 길 끝에서 찾은 것이, 같은 문제를 안고 사는 많은 사람에게도 닿기를 바란다.

지금의 치료로 지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아직 되돌릴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다음 글부터 그 경계를 하나씩 알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