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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수 있는 것, 되돌릴 수 없는 것

요약 · Summary

내 왼쪽 눈에는 녹내장과 백내장이 함께 있다. 두 병은 '지금의 의학으로 무엇을 되돌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정반대로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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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수 있는 것, 되돌릴 수 없는 것

첫 글 끝에 질문을 하나 남겼다. 지금의 치료로 지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아직 되돌릴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답은 내 왼쪽 눈 안에 둘 다 들어 있다. 녹내장과 백내장. 한 눈에 같이 와 있는 두 병은 이 질문에 정반대로 답한다.

한번 잃으면 돌아오지 않는 세포

녹내장은 눈과 뇌를 잇는 시신경 세포(망막신경절세포)가 조금씩 죽는 병이다. 이 세포는 다시 자라지 않는다.

더 무서운 건 순서다. 시야 검사에서 이상이 보일 즈음이면, 이 세포의 25~35%는 이미 사라진 뒤라는 연구가 있다. (연구) 그래서 전 세계 녹내장 환자의 절반 이상은 조사에서 발견되기 전까지 자신이 녹내장인지 몰랐다. 아시아는 유럽보다 놓치는 비율이 더 높았다. (연구)

미국 국립안연구소(NEI)의 설명은 짧다. 녹내장은 완치가 없고, 치료는 이미 생긴 손상을 되돌리지 못한다. (NEI)

지킬 수 있는 것: 멈춤이 아니라 늦춤

그렇다면 치료는 무엇을 하는가. 안압을 낮춰서, 남은 세포가 죽는 속도를 늦춘다. 안약, 레이저(SLT), 수술 모두 결국 이 한 가지를 한다.

이 효과는 꽤 정확하게 측정돼 있다.

  • 치료한 그룹과 치료하지 않은 그룹을 처음 비교한 EMGT 연구에서, 안압을 25% 낮추자 약 6년 동안 병이 나빠진 비율이 62%에서 45%로 줄었다. 진행 위험은 절반 정도였고, 안압이 1mmHg 낮아질 때마다 위험이 약 10%씩 줄었다. (연구, 분석)
  • 영국의 UKGTS는 가짜 안약과 비교해, 안약이 2년 안에 시야가 나빠질 위험을 56% 줄인다는 걸 보였다. (연구)
  • 안압이 '정상'인 녹내장에서도 안압을 30% 낮추자 진행 비율이 35%에서 12%로 줄었다. (연구)
  • 안약 대신 레이저로 먼저 치료한 사람의 약 70%는 6년 뒤에도 안약이나 수술 없이 목표 안압을 유지했다. (연구)

숫자를 오래 들여다보다 한 줄이 남았다. 치료를 받은 사람의 45%도 6년 안에 나빠졌다. 지금의 의학이 약속하는 건 멈춤이 아니라 늦춤이다. 녹내장에서 시간은 늘 내 편이 아니고, 치료는 그 속도를 조금 내 쪽으로 돌려놓는 일이다.

되돌릴 수 있는 쪽: 백내장

백내장은 반대다. 흐려진 수정체를 빼고 인공 렌즈를 넣으면 된다. 수술받은 10명 중 9명은 수술 뒤 더 잘 보게 된다. (NEI) 나도 2023년 오른쪽 눈 수술로 그 선명함을 돌려받았다.

다만 미국안과학회(AAO)는 선을 분명히 긋는다. 백내장 수술은 녹내장 같은 다른 병이 가져간 시력까지 돌려주지는 않는다. (AAO) 내 왼쪽 눈에서 백내장 수술이 돌려줄 수 있는 건 흐려진 렌즈까지다.

알게 된 것이 몇 가지 더 있다.

  • 수술 뒤 렌즈를 감싼 막이 다시 흐려질 수 있다. 핀란드에서 1만 개가 넘는 눈을 추적했더니 5년 안에 13.2%가 간단한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 (연구)
  • 녹내장이 있으면 넣을 수 있는 렌즈의 선택지가 줄어든다. 다초점 렌즈는 녹내장 눈에 일상적으로 권하지 않는다. (리뷰)
  • 내 왼쪽 눈에는 2009년에 넣은 ICL 렌즈가 아직 있다. 렌즈 가운데 작은 구멍이 있는 지금의 모델은 2011년부터 쓰였으니, 내 렌즈는 그 이전 모델일 가능성이 높다. (연구) 이게 앞으로의 수술에 어떤 의미인지는 의사에게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선이 움직이는 곳

그렇다면 되돌릴 수 없는 쪽의 선은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까. 2026년, 그 선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비타민 B3. 니코틴아마이드라는 형태의 B3가 시신경 세포를 보호할 수 있다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3월 한국 연구팀의 정상안압 녹내장 임상이 발표됐고, 4월에는 영국에서 378명 규모의 3상 임상 모집이 끝났다. 8월에는 미국 의료 기록에서 B3를 먹은 사람이 녹내장 진단을 덜 받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 임상, 영국 3상, 미국 분석)

하지만 아직 증명된 건 없다. 9월에 나온 체계적 문헌고찰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결론 내렸고, 결과는 2027~2029년에 나온다. (리뷰) 미국 녹내장학회와 안과학회는 임상시험 밖에서 하루 3g 이상 먹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 시험 참가자에게서 간 손상이 보고됐기 때문이다. (학회 입장)

ER-100. 첫 글에서 소개한, 시신경 세포를 젊은 상태로 되돌리는 치료 후보물질이다. 10월 8일 회사 발표에서는 녹내장 환자 3명 모두 56일까지 큰 문제가 없었고, 그중 2명에게서 시야 검사가 좋아지는 '초기 신호'가 보였다고 했다. 시야 검사 지점의 28% 이상이 4dB 넘게 개선됐다는 것이다. (회사 발표)

나는 이 숫자를 조심해서 읽는다. 환자는 3명이고, 비교군이 없고, 회사가 직접 낸 발표다. 손상된 눈의 시야 검사는 같은 사람이 다시 해도 결과가 꽤 흔들린다. 그래도 '되돌린다'는 말이 사람의 녹내장 데이터에 처음 등장했다는 사실은 기록해 둘 만하다.

그 밖의 길은 아직 동물 단계다. 끊어진 시신경을 다시 자라게 하는 연구는 쥐에서 진행 중이고, 시신경 세포를 새로 넣는 사람 임상은 등록된 것이 없다. (스탠퍼드) 반대로, 검증되지 않은 줄기세포 시술로 시력을 크게 잃은 사례는 있다. (NEJM)

렌즈 하나로 두 병. 되돌리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 왼쪽 눈에 가장 가까운 소식이다. 미국 SpyGlass Pharma는 백내장 수술 때 넣는 인공수정체에 작은 약 패드를 붙였다. 이 패드가 녹내장 안약 성분(비마토프로스트)을 몇 년에 걸쳐 조금씩 내보낸다. 10월 19일 회사 발표에 따르면, 첫 인체 시험에서 4년 뒤 평균 안압이 25.1에서 15.9mmHg로 37% 낮아졌고, 21명 중 18명이 안약 없이 지냈다. (회사 발표)

다만 한 병원에서 비교군 없이 23명을 본 시험이고, 회사가 낸 숫자다. 3상 시험이 진행 중이고, 아직 승인된 제품이 아니다. 백내장과 녹내장이 함께 있는 눈을 수술 한 번으로 다루려는 시도다.

지금 할 수 있는 것

되돌릴 수 없는 병에서 가장 큰 무기는 일찍 아는 것이다. 공부하면서 가장 놀란 숫자 두 개가 있다.

  • 한국의 남일 연구에서 개방각 녹내장의 약 77%는 안압이 정상 범위에서 생겼다. (연구) 안압만 재는 검사로는 대부분을 놓친다는 뜻이다. AAO도 안압만 확인하는 검사로는 녹내장을 찾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시신경 검사와 OCT 촬영, 시야 검사를 같이 해야 한다. (AAO)
  • 근시가 있으면 개방각 녹내장 위험이 약 2배다. 근시가 심할수록 위험은 더 커진다. (연구, 메타분석)

다음 진료 때 나는 이렇게 물어볼 생각이다. 내 녹내장은 어떤 유형인가. 내 목표 안압은 얼마인가. 내 ICL은 어떤 모델이고, 그게 앞으로의 수술에 어떤 의미인가. 백내장과 녹내장 수술을 함께 하는 게 나은가. 녹내장이 있는 눈에는 어떤 렌즈가 맞는가.

잃은 것은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남은 것을 지키는 속도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선이 움직이는 쪽을 계속 지켜볼 것이다.

나는 의사도 과학자도 아니다. 이 글은 내가 읽은 연구를 정리한 기록이지 치료 조언이 아니다. 틀린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