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본질은 동기와 비전이다
요약 · Summary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고 네트워크를 만드는 곳이었다. AI가 지식의 가치를 떨어뜨린 지금, 네트워크마저 학교 밖에서 만들어진다면 교육에 남는 건 무엇일까. 실리콘밸리 부모들의 자녀를 가르치는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와, AI를 평생 선생님으로 삼는다는 것에 대해.

교육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학교는 원래 지식을 가르쳐 주던 곳이었다. 그리고 네트워크를 만들어 주는 곳이기도 했다. 이제 AI 때문에 지식의 가치가 떨어졌으니, 앞으로는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학교에 간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나는 네트워크도 학교를 중심으로 만들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학교에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모였다. 하지만 이제 가장 똑똑한 아이들은 중학교 때부터 자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투자를 받거나, 특정 커뮤니티에서 자기만의 평판을 쌓고 있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의 자녀를 가르치는 분을 만난 적이 있다. 대기업 회장이나 이름난 벤처캐피털 시니어 파트너의 자녀 같은 아이들이다. 그분 말로는 이런 아이들은 학교에 가도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빠와 아빠가 평소에 만나는 사람들이 너무 대단하다 보니, 학교에서 열심히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드라마 '스카이캐슬'처럼 이 아이들에게 따로 과외를 붙이는데, 선생님은 창업을 한두 번 해 본 UC 버클리나 스탠퍼드 출신을 높은 연봉을 주고 데려온다고 했다. 그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아빠도 인정하는 창업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동기'와 '롤모델'이라고 했다.
롤모델을 내 식으로 표현하면 비전이다. 결국 필요한 건 동기와 비전이고, 이건 내가 지난 글에서 쓴 MTP(Massively Transformative Purpose), '세상을 크게 바꾸는 목적'과 같은 이야기다.
부모님한테 칭찬받으려고, 동네 친구들과 선생님들한테 칭찬받으려고 공부하고 좋은 성적을 받으려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부모님은 언젠가 돌아가시고(지금 생각해 보니 안 돌아가실 수도 있겠다), 동네 친구들은 언젠가 나를 떠나고, 선생님은 미래의 나에게 조언해 줄 수 없다. 나를 길게 보고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뿐이다.
그런데 이제 AI가 그 조언자가 되어 줄 수 있다. 평생 나와 붙어 있으면서 나에 대한 맥락을 알고, 나와 가장 자주 대화하는 상대이기 때문이다.
이건 막연한 기대가 아니다. 1984년 교육심리학자 벤저민 블룸은 1:1 과외를 받은 학생의 평균 성적이 교실에서 배운 학생의 98%보다 높았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2 시그마 문제'다. 과외가 이렇게 효과가 크지만, 모든 아이에게 과외 선생님을 붙여 줄 수는 없다는 게 문제였다. 2011년에 여러 연구를 모아 다시 본 결과로는 효과가 2 시그마가 아니라 0.8 시그마 정도였지만, 그래도 큰 차이다.
그 과외 선생님 자리에 AI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2025년 하버드 물리학 수업에서 학생 194명을 무작위로 나눠 실험했더니, 잘 설계된 AI 튜터로 혼자 공부한 학생들이 경험 많은 강사가 진행한 능동 학습 수업을 들은 학생들보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이 배웠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세계은행이 고등학생들에게 방과 후 6주 동안 GPT-4 기반 AI로 영어를 공부하게 했는데, 성적이 약 0.3 표준편차 올랐다. 세계은행은 이를 보통 2년 가까이 배워야 오르는 만큼이라고 설명했다.
나도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이다. 어떻게든 AI에 자연스럽게 노출시켜 주고 싶은데, 반대로 인터넷에 너무 일찍 노출되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두렵다. 능동적으로 질문하고 거기에 답하는, 선생님 같은 관계라면 좋겠다. 하지만 시험 문제를 넣고 나온 답을 답안지에 옮겨 적는 중간자 역할만 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결국 그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혀야 하고, 그 난관을 넘는 과정에서 힘이 나온다.
이걸 보여 주는 연구도 있다. 2025년 튀르키예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 1,000명 가까이를 나눠 수학 실험을 했는데, ChatGPT 같은 AI를 그냥 쓰게 한 학생들은 연습 문제 점수가 48% 올랐지만, AI 없이 본 시험에서는 아예 안 쓴 학생들보다 17% 낮았다. 답을 바로 알려 주지 않고 힌트를 주도록 만든 AI 튜터를 쓴 학생들은 이런 손해가 거의 없었다. 같은 AI라도 선생님처럼 쓰느냐, 답안지처럼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갈린다.
AI가 무슨 일이든 다 해 준다지만, 동기와 의지, 비전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컴퓨터에게 "모든 걸 다 구현해 줘"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컴퓨터도 실수를 하고 비효율적이다. 그걸 잡아내고 더 효율 높은 기계가 되도록 돕는 건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면, AI도 그 사람을 높게 평가한다.
그래서 아이는 '답'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방향'을 잘 세우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AI의 문제점이 뭘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누군가 그랬다. AI의 결과물을 보고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게 바로 취향이라고. AI는 모든 질문에 가장 그럴듯하고 일반적인, 그래서 희석된 답을 내놓는다. AI의 답은 정답에 가까울 수는 있어도 독창적인 답이 되기는 어렵다.

1905년 이전의 지식만 준 AI가 상대성이론 같은 생각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보자는 '아인슈타인 테스트'라는 제안이 있다. 아직 이 시험을 통과했다고 확인된 AI는 없다. 아인슈타인은 그 시대 모든 아이디어의 합의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자기만의 관찰로 만들어 냈다. 인간은 계속 이 세상의 프론티어에 있는 지식, 그 너머를 추구해야 하고, AI가 그 길로 가도록 안내해야 한다.
참고
- 2 시그마 문제: Bloom, "The 2 Sigma Problem" (Educational Researcher, 1984), 후속 분석: VanLehn (Educational Psychologist, 2011)
- 하버드 AI 튜터 실험: Kestin 외, "AI tutoring outperforms in-class active learning" (Scientific Reports, 2025)
- 나이지리아 AI 과외: 세계은행, "From chalkboards to chatbots"
- 튀르키예 고등학교 실험: Bastani 외, "Generative AI without guardrails can harm learning" (PNAS, 2025)
- 아인슈타인 테스트 제안: "The Einstein Test" (arXiv, 2025)
- 사진: 아인슈타인, 1921 (위키미디어 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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